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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고 싶은 사진

우연




PENTAX MX, SMC M 50mm, NPH400, Film Scan


[아래는 먼저 올렸던 글입니다]



2005년 첫 토요일.
일찍 잠자리에 들기에는 너무 아까운 주말 밤이라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낯익은 장면이 나옵니다...
'겨 울 연 가'
또 무슨 한류이야기를 하는 연예가 중계인가하고 채널을 돌리려는데
경박한 리포터의 음성대신 드라마 장면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겨울연가의 재방인가봅니다.

영상이나 구성이 기억에 남아있는 것보다 조금 촌스럽다 느끼며 보고 있는데
준상과 유진이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느슨해진 눈길을 다시금 잡아 놓습니다.
창으로 들어 온 빛을 받으며 피아노 치던 유진과 준상의 모습....
그걸 보며 '아!  저 곳을 사진에 담고 싶다'  생각합니다.
거의 환자 수준으로 요즈음 저는 머리 속이 사진생각으로 가득한 겁니다.

그리고 오늘 일요일 오후,
채린이를 어린이 예배에 데려다 주고 3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어제 잠시 들렀던 북촌과 삼청동에 아쉬움이 많이 남은터라
다시 차를 몰고 갔습니다.

가회동 길을 올라 가다 오른편으로 요즘 박완서님의 '그 남자네 집'을 읽으며
상상해 보던 조선기와집 골목이 보입니다.
차를 세우고 언덕을 올라가 셔터를 한번 누르고 보니 이미 골목길 위에 서 있던
한 여자분이 사진을 찍다가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십니다.
저 역시 웃음으로 화답합니다.
아마도 같은 느낌을 공유한다는 그런 반가움이었을 겁니다.

몇번의 셔터를 누르며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자전거를 탄 서양인 남자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연스레 시선을 쫓으니 경비실부터 눈에 띄는 학교로 들어갑니다.
제지당하지 않음을 확인하고는 저 역시 따라 들어가 봅니다.

학생시절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처음 와 본 그 학교.
우측에 보이는 아주 낡은 건물부터 발길이 향합니다.
혹시나 하고 문을 미니 삐그덕 열리고
어지러히 놓여진 의자들과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들이 눈에 들어 옵니다.
이리 들어와도 되나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잠시
저 멀리 창가에 놓여져 있는 피아노가 저를 황급히 잡아 끕니다.
창가의 빛과 피아노가 너무도 멋집니다.
iso400 필름이 감겨있는 카메라부터 꺼내 셔터를 눌러 보는데
실내가 너무 어두워 노출맞추기가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세명의 여자가 조심스레 묻습니다.
들어가도 되는가하고...
저 역시 구경왔다 하니 빠른걸음으로 다가 옵니다.
그리고 제게 물었던 여자가 일행 둘에게 일본어로 이야기합니다.
'이 피아노가 준상과 유진이 쳤던 피아노라고....'

아~ 이런 우연이 또 있나 싶습니다.
어제 보고 싶다 느꼈던 그 피아노를
오늘 발길 닿는대로 걷다가 보게 되는 이런 우연이란.....

채린이를 할머니 따라 집에 먼저 보냈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그곳에서 잠깐 기다리라 합니다.
그리곤 차를 몰아 명동에서 아내를 다시 태우고
그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의 따뜻한 볕을 느낄 수 없는 시간이라는게 조금 아쉬었지만
아내에게 그 강당과 피아노는 더할 수 없는 재미이자 반가움입니다.
건반을 두드려 보던 서너명의 일본여자들이 나가고 강당안이 비었습니다.
카메라 두대를 강단앞에 놓은채 아내에게 피아노를 쳐보라 합니다.
보통 때 같으면 손사래를 쳤을 아내가 창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볕을 받으며
몇곡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Over the Rainbow'의 선율이 울릴 때
저 역시 카메라를 잠시 놓았습니다.
순간 저 멀리 강당 끝 출입문이 조용히 열리고
십여명의 여자들이 들어 와 멈추어 섭니다.
아내는 아무 낌새도 못차린 채 끝까지 곡을 연주합니다.

그리곤 강당의 빛을 따라 박수소리가 전해져 들어옵니다.
준상과 유진의 피아노를 보러 십여명의 젊은 일본여자들이
가이드 따라 들어왔다가는
피아노 연주소리에 잠시 조용히 서서 들어 주었나 봅니다.
'피아노 정말 잘 치시네요'
칭찬과 들려있는 카메라들이 쑥스러운지 눈웃음 한번 남기고 아내는 벌써
옆문을 열고 나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진한장 찍겠다 양해구하고 셔터 한번 누른 후
주섬주섬 카메라들을 가방에 쑤셔넣고 그 곳을 나왔습니다.

당신 정말 피아노 잘 치던데 하고 한마디 던지니
실력이 없어 흉보았겠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무안하다는 대답이었지만 표정에는 뭐라 표현키 힘든
미소가 가득합니다.
.
.
.
.
이런 우연...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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